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CSERC

행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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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재학생으로서, 신학대학원 커리큘럼 중 하나인 교회 밖 현장실천(기관 사역 인턴)을 통해 2016년 여름부터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에서 여러 가지 연구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주로 맡은 부분은 기독교대안학교 연구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번 학술대회의 자료를 수집하고 실태 조사하는 일을 돕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그래서였을까? 기독교교육학과를 전공한 이후로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학술대회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자료를 수집하고 논문을 읽으며 학술대회 주제에 대한 선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보다 주제 자체가 주는 매력이 컸다. 엄밀히 말하자면 매력이라기보다 ‘왜 이제야 이런 주제로 연구를 하고 논의를 하는지’ , 오랫동안 기다린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반가움과 함께 원망도 느껴졌다.
이번 학술대회 주제는 기독교대안학교의 재정이다. 2010년 이후로 기독교대안학교의 성장세가 감소함에 따라 그 원인을 짚어 가다보니 재정문제가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신앙교육을 지향함에 따라 ‘자발적’ 미인가 상태로 남기로 결정한 ‘소신있는’ 기독교대안학교들이 그 운영 방식(재정 충원)에 있어서 ‘지금 이 상태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내내 쉬쉬하던 민감한 주제를 공적자리로 불러온 듯싶다. 재정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상 돈의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경영의 문제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계획의 문제이다. 필자가 교육재정에 관한 전문가도 아니고 심지어 경영을 전공한 것도 아니기에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여러 논문을 읽으면서 이 주제는 ‘계획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고 동시에 충분히 가능할 법한 대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로 그것은 바우처이다. 학술대회에서 두 번째 발제를 맡았던 이길재 교수가 미국의 바우처 제도를 소개하고 한국의 것과 비교하며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그의 요지는 이렇다. 미인가 기독교대안학교가 일반학교의 교육보다 높은 교육성취도(학부모, 학생의 평가)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기독교 대안학교의 운영 성과가 공적 재정지원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교육비 세금을 내는 부모에게 (특별히 학업을 중단하거나 대안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대안교육 바우처를 제공해 주는 방안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제공된 바우처를 부모 또는 학생이 대안학교에 제출하면 그 바우처를 통해 학교가 재정을 충당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바우처는 굉장히 매력적인 대안이지만 여러 가지 위험성도 존재한다. 바우처 대상기관을 선정하는 문제, 1인당 공교육비를 책정하는 문제, 가계소득에 따라 지급하는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실 교육재정의 문제는 여러 사회적 이슈와 어젠다 그리고 법과 얽혀있기에 단번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재교수의 접근은 기독교대안학교의 공공성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공교육 내지는 정부와 계속해서 소통할 필요을 환기시킨다.
두 번째 대안은 강영택교수가 언급한 지역사회의 지원 확보 방안이다. 그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인용하며 (재정확보의 여러 가지 방안들이 있지만 그중에) 지역사회 속에서, 지역사회와 연대하며,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통한 운영방식을 제시한다. 지역사회와 연대는 공공신학에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 가장 필요함을 느끼는 부분이지만 한편으로 가장 이상적인 접근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그러나 강영택 교수의 연구논문의 실제 사례(미국의 커뮤니티 스쿨, 경기도교육청의 마을교육공동체)를 보면서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깨닫게 되었다. 또한 그는 재정행정의 문제가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 학교의 이념을 구현하는 길이 된다는 점을 상기시켰는데, 이는 기독교대안학교의 방향성에 대한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대안학교의 산파이자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소장인 박상진 교수의 연구논문 말미에서 필자는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대안학교의 시작이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헌신 때문에 가능했다라는 부분에서였다. 사실 어쩌면 ‘대안’의 본질은 ‘낭만’이지 않을까 싶다. 바우처와 지역사회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낭만’이라니 뜬금없는 소리일지 모르겠으나 기독교대안학교가 정체성을 지킨다는 것은, 교사로서 예수의 삶을 따라가고 배우는 공동체를 계속해서 지켜나가겠다는 것은 낭만을 낭만됨으로 남겨두어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돈의 문제는 지속가능성과 회복적탄력성을 고려한 새로운 경영과 시스템이 필요로 한다. 다만 효율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땅에 발을 딛고 낭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대안교육을 하는 사람들이기를 이기적이만 바래본다. 땅에 발을 딛고 서로 연대하며 작금의 문제에 대한 내부의 한 목소리를 만들어 공적자리에서 당당히 표현하고 토론하며 동시에 타협할 수 없는 정체성의 문제 ‘우리는 효율을 가장 우선시 하지 않는다.’ 돈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엘리트 교육, 귀족학교가 아님을 천명하며 그렇게 계속해서 낭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왜냐면 예수가 그러했기에.


류주영(장로회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