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CS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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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9. 7. 22-24(월-수) 
장소 강릉 예닮글로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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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님 인터뷰]

 

안녕하세요, 목사님.

이번 2019년 기독교학교 교사 컨퍼런스 소망찬 말씀 나눔 강사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께 듣고 싶은 말씀들을 몇 가지 질문 형태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Q1. 목사님의 책의 제목들을 쭉 보면 대체로 이라는 메타포, 그리고 세상에서의 고통, 그러면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이야기들이 주로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현재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핵심적인 문제가 뭐고,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를 여쭙고 싶어요.

 

1등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죠. 그러다보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을 바꿨어요. 돈이 주인노릇 하는 세상이 된 거죠. 결국은 교육도 그렇고, ‘스카이캐슬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전부 거기에 해당 되는 건데, 거기에 종교조차도 그런 세상에 복무를 한 거죠.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고, 부추겨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악순환 속에 사람들을 밀어 넣게 되었죠.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더 음험한 적,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음험(陰險)한 적, 나하고 너무 한 몸이 되어버려서 적과 나를 구별할 수 없는... 그런 이 있어요. 이게 뭐냐면 욕망이거든요. 욕망의 특색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 작동되기 시작하면 채워져야 하기 때문에, 뭔가로 자꾸만 채워야 돼요. 그런데 채워야 하는 그것은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늘 경쟁을 해요. 욕망은 독점을 지향하거든요. 독점을 지향한다는 얘기는 너의 아픔을 돌보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지금 세상이 꼭 그런 것 아니에요? 이때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세계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주류담론,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 세상에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거에서, 끝없이 주변화 되고 주변화 된 사람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시키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의 핵심이거든요. 그러니까 counter-narrative.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 counter-narrative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한다는 거죠. 이것은 외로운 길이에요.


그러니까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시혜(施惠)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우리 잘난 사람들이 좀 도와주고 ~ 우리 좋은 일 했어...’ 만족하는 것은 문제가 있죠.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주 음험한 체제가 만들어 놓은 거죠. 이 구조는 보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은 언제나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대상화 시켜놓고 있죠.


, 뭐 이런 단어가 내 책에 많이 등장한다고 그랬는데, 우리가 순례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쓴 것 같아요. 꼭 장소를 떠나서 어딘가로 가는 것만이 순례가 아니라, 순례자로 산다는 것은 내가 끝없이 추구해야할 진리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나에게 익숙했던 껍질을 깨고 더 나은 존재를 향해서 나아가는 일일 텐데요. 그 이야기는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걸 거고, 공부하는 사람은 늘 길 위에 있어야 하는 거죠.


결국 길 위에 있다는 이야기는 떠돌이가 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거룩함을 구현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죠. 근데 거룩함이라는 게 다른 게 없거든요. 거룩함을 아주 세속적 버전으로 표현하자고 한다면, 다른 사람의 살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거예요. 진짜 거룩함은 그런 거예요. 성경100번 읽고 매일 철야 기도를 해도, 다른 사람의 살 권리와 그들의 존엄한 삶을 인정 못하는 사람은 전혀 거룩하지 않은 거예요. 일상, 순례, , 이런 것들이 내 책에 자주 등장하는 까닭이 다 통해 있는 거죠.


Q2. 소망은 어디에 있나요?

 

소망은 어디에도 없어요. 소망은 찾는 게 아니에요. Find 하는 게 아니라 Create 해야 해요. 희망이 있는 데는 없어요. you can not find it, you have to create it.

 

Q3. 목사님 책을 읽으면 난생 처음 보는 단어가 있어서 옆에 사전을 끼고 봐야 해요. 어려운 단어를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것은 내 의도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언어가 존재했던 까닭은 뭐냐면, 그것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했기 때문에 그 언어가 존재했던 건데, 그러면 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경험이 사라진다는 이야기에요.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는 다양한 경험들이 사라지는 거죠. 예를 들어서 에스키모들은 눈 내리는걸 보면 white 라고만 이야기하지 않고 27가지 표현이 있대요. 그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경험들이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걸 그냥 white란 말로 환원시켜버리면 그 경험들은 다 사라지는 거죠. 인간의 삶이 너무 삭막해지는 거죠. 그래서 아름다운 말들을 일부러라도 익혀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외국 책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찾아보는 것처럼 우리말 찾아보는 게 왜 부끄러워요? 당연히 찾아야 하죠.


옛날에 홍명희 원작의 <임꺽정>을 읽었는데, 그 책이 우리말의 보고거든요. 안 쓰는 우리말. 처음에는 너무 몰라서 짜증나더라구요. 그래서 다 찾았죠. 노트를 만들고요. 그러다보니까 그 말이 나의 경험을 표현할 말이 없어 장황하게 이야기 했던 것들을 한 단어로 끝나게 해 주더라구요. 우리말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후 그냥 책이나 신문, 잡지를 보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너무 반가운 친구 만나듯, ‘넌 누구니?’ 그러고, 찾아서 친해지기 시작했죠. 수첩에다 적어놓고 익히는 거죠. 예를 들면, ‘너룩하다’, ‘너누룩하다’, 이런 경험들, 잘 모르는 말이잖아요. 그럼 빨간색으로 적어요. 그리고 사전을 찾아서 단어를 써요. 떠들썩하던 것이 잠시 조용하다. 심하던 병세가 잠시 가라앉다. 이렇게 쓰는 거지요. 서른 번쯤 눈 맞춤하면 쓸 수 있는 단어가 돼요. 그래서 난 늘 이렇게 수첩을 옆에 두고 보는데, 지금도 이걸 계속 하는 거죠. 영어문장 중에도 좋은 게 있으면 적기도 하고, 단어도 이렇게 하기도 하고 하잖아요.

 

Q4. 이화여고에서 교목으로 지내셨던데, 어떻게 교목이 되셨고, 교목 생활은 어떠셨나요?

 

무슨 큰 뜻을 품고 그런 거 없고 그냥 갔어요. 가서 즐거웠고요. 17반 수업에 들어갔는데 나 스스로가 똑같은 하는 걸 재미없어 해서 17반 들어가면 다 딴소리 했던 거 같아요. 아이들하고 도 같이 읽고 영화 분석도 하고, 그렇게 지냈죠. 이화에서 보냈던 시간이 참 좋았어요. 왜냐하면 비기독교인이 많으니까. 비종교적 언어로 복음의 핵심을, 그러니까 기독교를 전한 게 아니라 기독교가 보여주려고 하는 가치의 핵심을 비종교적 언어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하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게 학교에서의 일이었죠.


종교적 언어는 게토화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의미 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주 의미 없는 언어죠. 그냥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이야기하는 거죠. 굳이 종교적 언어가 아니더라도. ‘구원이라던지, ‘은혜라던지 이런 말은 작동되지 않는 거니까 그걸 바꾸는 훈련을 해보는 거죠. 강사로는 2, 전임으로 가서는 2년 반 있다 나왔죠.

 

Q5. 목사님은 청파교회에서만 전도사부터 계속 계신 거예요?

 

이유 없이 떠날 이유는 없어요. 교육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그렇고. 이런 것도 있어요. 외롭게 세상을 떠돌다가 , 지쳤다싶은데 거기 가면 있는 사람, 느티나무처럼 거기 가면 말없이 품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장소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거든요. 굳이 떠날 이유가 있다면 떠나야 하지만... 피차 신뢰가 쌓이면, 내가 하면 저쪽에서 할 줄 알고...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관계이기 때문에 함께 오래 지낸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6. 교회 본당에 생명평화라는 글이 써져 있던데요?

 

제가 담임목사가 되었을 무렵에, 장로님 한분이 나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목사님, 평생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동어 반복적 말만 듣는데, 굉장히 공허해요.’ ‘그렇지, 공허할 수밖에 없지.’라는 공감을 했고, 그래서 고민을 했죠. 이분들에게 필요한 건 예수 믿고 구원 받는다서술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 서술어 속에 포함되어있는 명령어가 뭔지에 대한 고민이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찾은 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삶의 열매로 나타나야 되는 게 뭘까 하다가, 저걸(‘생명과 평화’) 내가 내세운 게 20년이 넘었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의 지향은 평화여야 하고 생명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 교인들이 공감해 준 거고 오래 됐죠. 지금은 유행담론이 되었는데, 우리가 처음 저거 할 때는 저 단어 쓰는 사람 많지 않았어요.

 

Q7. 저희 이번 컨퍼런스 주제가 미래사회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미래 담론을 많이 이야기해서 익숙하긴 하지만, 그 미래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고민이 계속 있거든요. 미래사회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저는 미래 잘 몰라요. 그런데 중요한 게 뭐냐면, 사람은 먹고, 자고, 놀고, 때때로 울고, 웃고 그게 삶의 전부이지요. 앞으로 세상이 많이 바뀌겠지만. 그러나 인간의 감성을 지배하고 있는 삶의 형태는 바뀔 수가 없어요. 그걸 끈질기게 어떻게 붙잡고 나가고 그 속에서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가 중요하지요. 놓치지 말아야 할 중대한 것들을 잡고 가는 게 기독교라고 난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 이런 세상이 도래하는구나.’ 하는 걸 알면서도, 그러나 어떤 세상이 오든 변하지 않는 삶의 무언가, 즉 어떤 세대가 오더라도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고 하는 삶의 기본은 바뀔 수가 없어요. 어떻게 끝까지 그 인간적인 삶을 견지하도록 할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미래를 향해 휙 날아가는 것이 아니고, 확 날아가기 쉬운 아이들을 붙잡아가지고 이게 인간적인 삶이야이렇게 붙들어주는.... 오래된 미래. 진짜 지향해야 될 것은 오래된 미래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Q8.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교사는 어쨌든 복 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하면, 누군가에게 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는 것, 이게 굉장히 복 받은 거예요. 그것만큼 두려운 길이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표지판이 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야 하는데, 누가 바꿔놓으면 엉뚱한 데로 가거든요. 그래서 정말 두렵고 떨리는 일이고. 교사라고 하는 게...


국민일보 칼럼에 스승의 날이라고 어떤 사람이 스승일까?’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몇 마디 썼는데, 이건 내 경험이기도 해요. 첫째, 스승이란 그 사람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서 호명해 주는 자예요. 교육 education이라는 단어 속에 그런 뜻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조금 더 이야길 하자면,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거든요. 내 속에 뭐가 있는지 몰라요 대부분. 시를 읽고 평론가들이 비평을 쓰면 시인들이 이거 맞았네 틀렸네안 그래요. 대개 , 이게 내가 사유하는 방식이구나비평가들을 통해 자기를 알아요. 남이 봐줘야 해요. 누군가가 그 사람 속에 있는 좋은 가능성을 보아 내기 위해서는 자세히 봐야 하고, 자세히 보고 그것을 호명해 주었을 때, 그 사람은 그것을 살기 시작해요. 그런 의미에서 발견하는 자, 사람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호명하는 자가 교사지요.


또 하나는 뭐냐면, 꾸짖어 바로잡는 자가 교사예요. 지나치게 간섭은 안하지만, 잘못 된 길로 갈 때는 그거는 아니야단호하게. 질정(叱正)해주는 거. 내가 꾸짖을 수 있기 위해서는 내가 맑지 않으면 꾸짖을 수가 없어요. 맑지 않은 사람이 꾸짖으면 그거는 독이 돼요 오히려. 그러니까 교사라고 하는 존재는 스스로를 굉장히 맑히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거죠.

한걸음 더 나가자고 한다면, 더 궁극적인 교사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에 대해서만 답해주는 사람이에요. ‘이게 답이야하고 제시하지 않고, 그들 속에 질문이 일어났을 때, ‘난 이렇게 생각해라는 정도로만 이야기 해준다든지, 선생님들은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푯말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룩하죠.

 

Q9. 목사님 올해 신년예배 때, 하신 설교를 보니까, ‘맑고, 밝고, 명랑하게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많이 지쳐있는 기독교대안학교 교사들에게도 이 메시지가 전해지는 컨퍼런스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 의미를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힘을 빼야 명랑해져요.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힘을 빼는 건데, 권투를 할 때도, 제일 어려운 게 뭐냐면. 어깨에 힘을 빼는 거거든요. 긴장하면 선수들이 어깨에 힘을 탁 주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아주 가벼워져야 되거든요. 똑같은 건데, 내가 굉장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어가지 어렵고. ‘내가 하는 일은 조금 하다가 가는 거지 뭐, 내가 뭘 하겠어이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내가 어떤 결실을 거둬야 해, 내가 반드시...’ 이렇게 하면 힘들어져요.


세상은 그렇게 안 변해요. 내가 반드시 해 내야지.... 해서 변하는 게 아니고. 내가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상하게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는 게 분명 있어요. 아무리 밀어도 안 돼, 그런데 우연히 툭 했는데 확 넘어가는 경우가 있거든. 교육도 그런 거거든요. 명랑하기 위해서는 저는 산책을 많이 해요. ‘우와~, 너 폈니? 우와~, 찔레꽃이 폈구나이렇게 들여다보고. ‘우와~, 백당나무 너 반갑다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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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7월 기독교학교 교사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강릉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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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제목 일시
접수중 2019-2학기 목요포럼 9/19. 10/10, 11/7 
접수중 2차 유바디 컨퍼런스에 초대합니다! 2019년 9월 30일(월) - 10월 1일(화) 
[인터뷰2] 2019 기독교학교 교사 컨퍼런스 주강사 -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 file 2019. 7. 22-24(월-수) 
종료됨 9회 기독교학교교사 컨퍼런스 file 2019년 7월 22일(월)-24일(수) 
종료됨 [인터뷰1] 2019 기독교학교 교사 컨퍼런스 주강사 - KEDI 김창환 박사님 file 2019년 7월 22일(월)~24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