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CSERC

칼럼

관점의 디자이너

CSERC 조회 수:12 2020.05.01 15:33

함영주 교수(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교육자의 무게는 그가 가진 교육적 책임의 무게이다. 교육자는 누군가에게 좋든 안 좋든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은 그 교육자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고 그 결과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결과를 내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있는 교육자는 그 어떤 사람보다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이러한 중차대한 역할을 하는 교육자를 관점의 디자이너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대학에서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학생을 가르칠 때와 대학원생을 가르칠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데 있다. 대학생을 가르칠 때는 내가 학생들에게 밑그림을 그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생들은 백지 같은 순수한 마음의 그림판에 선생님이 그려주는 밑그림대로 학업도 설계하고 인생도 설계해 나가는 것 같다. 그런데 대학원생들을 가르칠 때는 자신들이 그려온 밑그림에 색깔을 살짝 덧칠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학업과 인생에 대해 자신만의 밑그림을 그려온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약간의 사사를 받아 인생의 그림에 색을 칠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나는 대학원생보다 대학생들을 가르칠 때 더 심장이 뛰고 더불어 더 큰 책임의식을 느낀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된 밑그림을 그려주어 학생의 인생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하여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교육자란 누군가의 마음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심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교육자는 그가 사역자든, 교사든, 그리고 부모든 우선 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과 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실한 신앙적 관점이 다음 세대에게 바른 성경적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교육에서 예수님을 일컬어 위대한 교사’(Jesus the master teacher)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심어주시고 또 그 시각을 교정시켜주셨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과 4장을 보면 유대인 지도자인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등장한다. 이 두 사람은 신분, 지위, 역할, 지식, 배경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대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고 복음과 영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예수님과 영생을 잘 몰랐던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7장과 19장에 가면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 점점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된 예배와 영생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수가성 여인 역시 요한복음 419, 29, 39절로 갈수록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결국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따르는 자가 된다. 완벽히 다른 배경을 가진 이 두 사람의 관점을 바꾸어 주신 분이 바로 위대한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복음을,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것이다.

나는 사역자, 교사, 부모가 예수님 같은 관점의 디자이너들이 다 되기를 바란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내게 배움을 받는 자녀가, 그리고 학생이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세상을 살아갈 목적과 이유가 바뀌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우리 모두가 거룩한 관점의 디자이너가 되어 하나님의 교육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기도한다.